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시아 유대인 (문단 편집) == 근현대 == 고대와 중세에 강성했던 페르시아가 근현대가 되면서 황폐하고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하면서 페르시아 유대인 공동체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시골 지역의 유대인들은 가난하고 고립된 상황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계속 늘어났고, 도회지에 사는 유대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생활 기반을 잠식당하며 경제적인 곤경을 겪었다. 적지 않은 페르시아 유대인들은 16~18세기 아르메니아인들이 없는 중앙아시아의 [[부하라]]시를 중심으로 이주하였다. [[부하라]]시의 유대인 공동체들은 튀르크계 지배자들의 눈치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척 하면서 집에서는 몰래 유대교를 믿는 이중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부하라 유대인]]은 소련의 개방과 붕괴 이후 대량 이민으로 인해 오늘날 부하라에는 단 150명 정도만 남아있고, 우즈베키스탄에 남아있는 부하라 유대인들의 수 역시 천명 안팎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에는 대략 10~12만명이 살고 있고, 미국으로 이민간 부하라 유대인들은 [[뉴욕]] [[퀸즈]]를 중심으로 5만명 정도가 모여산다고 한다. 19세기부터 카프카스 지역이 조금씩 러시아 제국에 점령되기 시작하면서 이 일대의 유대인들은 러시아인들과 조우하며 서구화되었다. 특히 교역 요충지 중 하나였던 중세부터 [[트빌리시]]는 조지아 유대인들의 주요 터전 중의 하나였다. 이들은 예루살렘 기준으로 동방에 있다는 이유로 [[미즈라힘]]으로 분류되기도 하나,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이민 온 [[아슈케나짐]]들의 영향도 받게 되었다. [[남아제르바이잔]]의 [[우르미아 호]] 인근에는 페르시아어 계열 언어 대신에 고대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인구가 잔류하던 마을들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en.wikipedia.org/wiki/Jewish_Neo-Aramaic_dialect_of_Urmi|우르미아 유대 신아람어 방언]] 문서 참조. 이 지역이 이란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터가 되면서 우르미아 유대인 상당수가 조지아 [[트빌리시]]로 이주하면서 인구가 대폭 감소하였다 한다. 조지아 트빌리시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잊어버리고 상술한 것처럼 러시아의 [[아슈케나짐]]들과 상당부분 동화되기에 이른다. 페르시아 유대인에게는 러시아의 카프카스 점령 이외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더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의 건국과 [[이란 혁명]]이다. 시오니즘에 동조하는 세력은 이스라엘로 넘어가기도 하였지만, 급속히 붕괴한 아랍권 유대인 공동체와는 달리 존속하였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한 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이스라엘의 개'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친유대 국가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동안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빼았겼던 경제적 이권을 되찼고 신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팔레비 왕조는 중동전쟁을 아랍인-유대인의 대결로 보았기 때문에 중동전쟁의 포화에서 이란은 없었다. 팔레비 왕조 말기 유대인의 80%가 중산층, 10%가 상류층이었고 10%만이 하류층으로 분류되었다. 기쁨도 잠시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180도 변해버렸다. 호메이니와 그의 지지자들은 국제사회의 눈치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 행위는 자제하였지만, 팔레비 왕조 당시 페르시아 유대인들이 누렸던 특권을 대폭 제한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은 패자부활전에 성공하면서 페르시아 유대인들은 다시금 몰락한다. 인구 절대수 자체도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해외로 탈출하면서 1976년 62,258명 → 2006년 9,252명으로 대폭 줄어버린다. 또한 이란 외에도 [[타지키스탄]] 등지에서도 독재나 유대인 탄압 등으로 인해 정치적 이유로 미국과 이스라엘 등으로 망명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교를 믿던 이들의 특성상 소련에서 [[무신론]]을 권장하고 종교를 탄압하는 와중에 많은 가정에서 유대교 교리를 아예 통째로 까먹은 관계로 그냥 러시아계로 귀화해서 조용히 입 닫고 묻혀갈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한편 구 소련권은 아니지만 근처의 [[아프가니스탄]]에는 몽골 제국의 침략 전까지 유대인 공동체가 번영하였고 러시아 혁명 당시 망명한 유대인들이 있었지만 내전의 영향으로 소련 등 다른 주변국가로 난민으로 망명하거나 극소수만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